《이터널스(Eternals)》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확장을 위한 실험적 작품으로, 기존의 히어로 서사에서 벗어나 철학적 주제와 인류의 기원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이야기를 시도하였다. 클로이 자오 감독 특유의 느린 호흡과 시적인 연출은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를 불러일으켰으며, 히어로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드는 시도였다. 다인종, 다양성, 비전형적인 캐릭터 구성을 통해 마블의 새 방향성을 제시한 이 작품은 단순한 액션물 그 이상으로 평가된다.
우주적 신화와 인간성의 경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10여 년간 일관된 서사와 캐릭터 중심의 세계관을 구축해왔다. 그러나 《이터널스》는 그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난 첫 번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기존 히어로물의 ‘영웅 탄생과 성장’ 구조가 아닌, 수천 년을 살아온 불멸의 존재들이 지구를 바라보며 겪는 정체성과 도덕성의 충돌을 그린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특유의 서정적 리듬과 자연을 중심으로 한 카메라 워크를 인정받은 바 있다. 그녀가 마블이라는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와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이며, 《이터널스》는 바로 그 이질감 속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셀레스티얼’이라는 우주적 존재가 창조한 불멸의 존재, 이터널스가 인류의 역사를 지켜봐 왔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이들은 단순한 전사가 아닌, 인간을 관찰하고 때로는 지켜야 할 사명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히어로물에서 다루기 어려운 철학적 질문 — 인간의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창조자의 목적과 피조물의 의무는 어떤 관계인가 — 를 중심에 둔다. 이러한 접근은 기존 마블 팬들에게는 낯설 수 있으나, 영화가 추구하는 본질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사유하는 히어로물’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에 가깝다. 서론에서는 《이터널스》가 기존 마블 세계관과 어떻게 다르며, 어떤 주제를 시도하려 하는지에 대한 전반적 윤곽을 짚어본다.
서사, 구성, 그리고 새로운 다양성의 의미
《이터널스》는 단순히 새로운 캐릭터를 소개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10명이 넘는 주인공을 각각의 배경과 내면 서사를 부여하며 평등하게 배치한다는 시도 자체에서 대담하다. 이카리스(리처드 매든), 세르시(젬마 찬), 킹고(쿠마일 난지아니), 드루이가 등장은 하나의 팀을 구성하면서도 각자의 갈등과 선택을 동반하며, 마치 인류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또한 이 영화는 마블 최초로 청각장애인 히어로(맥카리), 성소수자 가족을 둔 히어로(파스토스), 동양 여성 중심 서사(세르시) 등을 포함하며 다양성 측면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은 관객들 사이에서 양면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긍정적으로는 ‘포용성의 확대’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며, 부정적으로는 ‘너무 많은 인물 소개로 인한 서사의 분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연출은 이러한 다중 서사를 보다 사색적으로 풀어내려 했지만, 마블 특유의 액션과 긴장감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느리고 무겁게 다가올 수 있었다. 특히 전개 중반 이후 이터널스 각자의 신념이 충돌하며 드러나는 갈등 구조는 매우 흥미롭다. ‘창조자의 명령을 따를 것인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할 것인가’라는 갈등은 종교, 윤리, 철학적 차원의 주제를 다룬다. 이는 MCU의 기존 캐릭터들이 대개 외부 악을 상대하며 성장한 것과 달리, 이터널스는 ‘내부의 윤리적 충돌’이라는 심화된 구조를 선택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이터널스》는 액션과 스토리 이상의 철학적 의미를 추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비록 그 실험이 대중적으로 완전히 성공하진 못했지만, 본작은 분명히 MCU 내에서 독자적 위치를 차지한다.
실패인가, 진화의 전초기지인가
《이터널스》는 MCU 내 흥행 면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 작품으로 평가된다. 북미 박스오피스 성적이나 팬덤 반응 면에서 기존 마블 영화들에 비해 열기가 낮았고,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뚜렷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진정 실패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다. 《이터널스》는 MCU가 ‘히어로의 범주’를 확장하고자 했던 실험적 시도이며, 그 방향성 자체는 의미가 깊다. 지금까지 마블 영화가 구축한 일관된 공식은 분명 흥행에 유리했지만, 장기적으로는 피로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터널스》는 마블의 ‘내면적 진화’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속 이터널스들은 ‘신의 명령’을 받들어 인간을 통제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감정과 판단에 의해 운명을 거스르려 한다. 이는 단순한 히어로가 아닌, 고뇌하는 존재로서의 새로운 정체성 확립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시도가 영화로서 모든 요소에서 성공적으로 작동한 것은 아니다. 많은 인물과 복잡한 배경 설명, 비선형적 서사 구조는 일반 관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며, 속도감 있는 전개를 기대하는 MCU 팬들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터널스》가 제시한 다문화적 서사, 윤리적 딜레마, 인간 중심 철학은 장기적으로 마블 영화의 틀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터널스》는 현재의 기준으로만 평가하기엔 이르다. 오히려 이 작품은 MCU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며, 향후 세계관 전개에 있어 실험적 전환점으로 기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터널스》는 단순한 흥행작이 아닌, 마블이 ‘자신의 방식’만 고수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