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는 일상의 무게에 지쳐 도시를 떠난 주인공이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일본 만화 원작을 토대로 한국적 정서를 섬세하게 담아낸 이 영화는, 거창한 사건이나 갈등 없이도 충분히 따뜻하고 풍성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음식, 계절, 자연,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진짜 삶이 무엇인지 조용히 묻는 이 작품은,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작은 숲'을 떠올리게 하며, 치유와 자립, 그리고 삶의 속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도시의 피로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온 어느 날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주인공 혜원(김태리)이 서울에서의 고단한 삶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시험, 취업, 인간관계에 치여 하루하루를 버티는 도시의 삶 속에서 혜원은 어느 순간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 맞닥뜨리고, 스스로 삶의 속도를 늦추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그녀는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그곳은 변화가 거의 없는 곳이지만, 계절은 순환하고 자연은 조용히 말한다. 혜원은 마당 텃밭을 가꾸고, 제철 재료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조금씩 마음의 틈을 메운다. 극적인 사건은 없다. 하지만 그 일상의 반복 속에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무언가를 재건하기 시작한다. 혜원이 만드는 음식은 단지 먹는 것 그 이상이다. 계절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고, 과거 어머니와의 기억을 떠올리는 도구가 되며, 자신을 위로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고구마전을 부치고, 직접 담근 된장으로 찌개를 끓이고, 눈 내리는 날 따뜻한 호떡을 구워 먹는 장면은 누구에게나 마음 한구석을 건드리는 감성을 전한다. 임순례 감독은 이 일상을 아름답게 담기 위해 자연광과 로케이션, 소리까지 섬세하게 설계했다. 시골의 바람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땅 밟는 소리, 요리하는 순간의 찰칵거림까지—all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이어진다. 관객은 혜원의 시간 속에 들어가 함께 멈추고, 함께 숨을 고르게 된다. 이러한 서사의 힘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하고 있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그렇게 관객의 마음에 조용히 뿌리를 내린다.
음식, 계절, 관계… 작고 단단한 삶의 형태
‘리틀 포레스트’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다. 그러나 이 음식은 단순한 요리의 과정이나 레시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혜원의 삶 그 자체다. 음식은 기억의 열쇠이며, 계절의 상징이자, 관계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다. 어머니와 나눴던 밥상, 친구들과 함께 먹는 김치전, 혼자 만들어 먹는 땅콩버터 토스트—이 모든 장면은 ‘살아가는 것’의 본질을 드러낸다. 계절 역시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봄에는 파릇한 새싹을, 여름엔 초록빛 농작물을, 가을엔 풍성한 수확을, 겨울엔 차가운 고요함을 보여준다. 이 변화 속에서 혜원은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는다. 도시에서는 시간에 쫓기고 일상에 눌려 지냈지만, 고향에서는 시간과 자연을 함께 살아간다. 바로 이 점이 ‘리틀 포레스트’가 단지 한 여성의 귀향기가 아닌, 존재의 회복담으로 읽히게 한다. 또한 이 영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느슨한 연대감을 아름답게 그린다. 옆집 친구 은숙(진기주), 동네 친구 재하(류준열)는 혜원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때로는 도움을 주고, 때로는 위로가 된다. 이들의 대화는 과하지 않고, 오히려 조용히 공감대를 넓혀간다. “서울은 잘 있더나?”,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들이 관객에게 따뜻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무엇이 성공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사회적 기준에 의문을 던진다. 혜원은 더 이상 남들과 경쟁하거나, 비교 속에 자신을 놓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리듬으로 살아야 할지,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스스로 찾는다. 그리고 그 과정이 결코 부끄럽거나 초라하지 않다는 것을 영화는 분명히 말한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 ‘작은 숲’을 찾아서
‘리틀 포레스트’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영화다. 특히 지친 일상 속에서 방향을 잃은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영화는 말한다. “도망치는 게 아니라 쉬는 거야.” 이 한마디가 그 어떤 동기부여보다 큰 울림을 준다. 누군가는 성공을 좇고, 누군가는 사랑을 좇지만, 어떤 이들은 그저 ‘멈추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한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람들에게 조용히 손을 내민다. 혜원은 영화의 끝에서 서울로 다시 떠난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그녀는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의 기준을 만들었고, 살아갈 방향을 선택했으며, 자기 속도를 되찾았다. 어머니가 남긴 노트처럼, 그녀는 이제 자기만의 레시피로 삶을 요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작은 숲’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것은 실제 공간일 수도, 마음속 쉼터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곳이 ‘나를 위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늘 곁에 있으며, 필요할 때마다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을 준다. ‘리틀 포레스트’는 분명히 말한다. “모든 계절에는 제 역할이 있고, 모든 사람은 제 시간이 있다.” 그 사실을 잊지 말라고. 그리고 괜찮다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