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인피니티 사가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전편 <인피니티 워>의 비극적 결말 이후 남겨진 영웅들이 다시 일어서는 여정을 그린다. 시간 여행이라는 장르적 장치를 활용해 지난 10여 년간의 MCU 서사를 회고하고, 각 캐릭터의 성장과 이별을 완성도 높게 마무리한다. 특히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등 주요 인물들의 희생과 선택은 팬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기며, 블록버스터를 넘어선 감정의 집대성을 보여준다.
패배 이후, 다시 일어서는 자들의 이야기
2019년 개봉한 <어벤져스: 엔드게임(Avengers: Endgame)>은 전편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의 ‘스냅’으로 인류 절반이 사라진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는 기존 히어로 영화의 전형적인 승리 서사가 아닌, 패배 이후의 허무와 상실에서 출발한다. 살아남은 영웅들은 각자 상실감을 안고 무너진 삶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토니 스타크는 가족과 함께 은둔 생활을 하고, 캡틴 아메리카는 상담 모임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며, 토르는 죄책감과 우울에 빠져 현실을 회피한다. 이 영화의 독창성은 바로 이 ‘정체된 시간’에서 출발한다. 승리 대신 패배를, 전진 대신 정체를, 영광 대신 무기력을 먼저 그려내면서, 관객은 영웅들을 단순한 상징이 아닌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인간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영화는 치밀하게 보여준다. <엔드게임>의 서사는 크게 세 구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패배의 여파와 무너진 삶, 둘째, 시간 여행을 통한 인피니티 스톤 회수 작전, 셋째, 최종 결전과 희생이다. 이 구조는 감정적 여운을 유지하면서도 액션과 서사, 회상과 작별을 모두 담아낸다. 특히 시간 여행 구간에서 과거 MCU의 명장면들이 재현되며, 10여 년간 이어진 세계관의 기억이 현재 서사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 영화가 팬들에게 더욱 특별한 이유는 ‘마지막’이라는 상징성이다. MCU 1세대 히어로들의 여정이 이 편을 끝으로 완결되며, 각각의 캐릭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결말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결말은 단순히 영웅의 퇴장이 아니라, 한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이 관객과 작별하는 순간이 된다.
시간 여행과 감정의 회고록
<엔드게임>의 핵심 장치는 ‘타임 하이스트(Time Heist)’다. 남은 히어로들이 과거로 돌아가 인피니티 스톤을 회수해, 사라진 존재들을 되돌리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어벤져스>, <토르: 다크 월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등 MCU 주요 작품의 장면들을 다시 불러온다. 그러나 단순한 팬 서비스가 아니라, 캐릭터들의 감정과 성장을 완성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토니 스타크는 과거에서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와 대화를 나누며,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화해를 이룬다. 이는 그가 ‘아버지’로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결정적 계기다. 토르는 어머니 프리다가 살아있던 시점으로 돌아가, 자신이 영웅으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불완전함을 인정받는 순간을 경험한다. 캡틴 아메리카는 옛 연인 페기 카터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자신이 잃어버린 삶과 행복에 대한 감정을 다시 확인한다. 타노스와의 최종 결전은 시각적·감정적 클라이맥스다. ‘포털’ 장면에서 사라졌던 모든 영웅이 돌아오고, 전장의 중앙에 선 캡틴 아메리카가 “어셈블(Assemble)”을 외치는 순간은 10년간의 MCU를 응축한 역사적 장면으로 남는다. 아이언맨의 마지막 희생은 영화의 감정선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I am Iron Man”이라는 대사는 2008년 첫 영화의 대사와 연결되며, 그의 캐릭터 아크를 완벽히 마무리한다. 블랙 위도우의 희생 또한 서사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녀의 선택은 히어로로서의 사명이 아니라, 가족이라 여겼던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는 진정한 결단이었다. 이로 인해 호크아이는 생존하게 되고, 사라진 존재들을 되찾는 계획은 완성된다. 이 장면은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다. 비주얼적으로도 영화는 압도적이다. 대규모 전투 장면은 각 캐릭터의 전투 스타일과 능력을 극대화하며, 수십 명의 히어로가 동시에 싸우는 혼돈 속에서도 명확한 동선과 리듬을 유지한다. 음악은 앨런 실베스트리의 상징적인 테마를 변주하여 감정적 고조를 돕는다. 특히 엔딩 크레딧에 1세대 어벤져스 배우들의 친필 사인이 등장하는 연출은, 팬들에게 감사와 작별 인사를 전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 시대를 마무리한 영웅들의 작별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 현상의 종결이다. 이 작품은 블록버스터 액션, 캐릭터 드라마, 시리즈의 회고록이라는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그 균형을 완벽에 가깝게 맞춘다. 승리의 기쁨보다 희생의 무게를, 화려한 액션보다 작별의 아픔을 더 깊게 느끼게 만드는 영화다. 아이언맨의 죽음은 ‘히어로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초능력이 아니라, 필요할 때 모든 것을 걸고 맞서는 용기다. 캡틴 아메리카의 선택은 ‘희생’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는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삶과 사랑을 선택하고, 방패를 새로운 세대에 넘겨준다. 블랙 위도우의 부재는 팀의 완성을 위한 마지막 조각이자, 여성 히어로의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엔드게임>은 완벽한 결말을 향한 여정을 그리면서도,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남긴다. MCU의 다음 세대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영화가 남긴 감정적 유산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관객은 단순히 영웅들의 싸움을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선택, 그리고 작별을 함께 경험했다. 결국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영웅의 시대를 마무리하면서, 관객 모두에게 한 가지 메시지를 남긴다. “우리는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 문장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