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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리뷰 -여름/사랑/감정

by kkunzee 2025. 7. 20.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은 찬란한 여름날의 햇살 아래 피어난 첫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 영화다. 이탈리아 북부의 유유자적한 배경과 두 청년의 서툴지만 깊은 교감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찬란하고 동시에 얼마나 잔인한지를 조용히 말해준다. 이 영화는 사랑과 정체성, 그리고 성장의 순간을 가장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낸 작품이다.

한 사람을 통해 자신을 마주한 여름

2017년 개봉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은 안드레 애치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연출하고 제임스 아이보리가 각색을 맡았다. 이 영화는 1983년 여름, 이탈리아 북부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열일곱 살 소년 엘리오와 그의 집에 머물게 된 대학원생 올리버 사이에서 피어난 짧고도 깊은 사랑을 다룬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동성 간의 사랑을 다루었기 때문이 아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경험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지극히 섬세하고 아름다운 감정선으로 풀어낸다. 두 인물이 처음 만나 시선을 주고받는 순간, 망설임과 탐색, 두려움과 기대가 교차하는 그 감정의 리듬은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명확한 대사보다 서로의 행동과 공간을 통해 감정을 나눈다. 강가에서의 침묵, 복숭아를 매개로 한 장면,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길의 햇살은 모두 감정의 확산이자 흔적이다. 관객은 엘리오의 시선을 따라가며, 첫사랑의 복잡하고 애틋한 감정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이 작품은 결국, 사랑이란 감정이 얼마나 사적인 동시에 보편적인지를 말하고 있다.

 

사랑은 이름을 바꾸는 일

이 영화의 제목이자 핵심 대사인 “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은 단순한 낭만적 표현을 넘는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한 존재의 정체성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지를 상징하는 문장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부르며, 자신과 상대의 경계를 허문다. 이는 일시적 감정이 아닌, 정체성의 일부가 된 관계임을 암시한다. 배우 티모시 샬라메는 엘리오의 복잡한 내면을 연기하며 영화의 중심을 단단히 지탱한다. 그의 눈빛, 몸짓, 울음은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아미 해머가 연기한 올리버는 자유롭고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결정을 미루는 이방인의 위치를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두 인물은 함께 있음으로써 더 충만해지지만, 동시에 끝을 직감하며 점점 짙어지는 슬픔을 품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햇살 가득한 들판, 유서 깊은 저택의 서재,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는 산악 열차는 모두 감정의 풍경이다. 특히 사운드트랙으로 삽입된 수프얀 스티븐스의 ‘Mystery of Love’와 ‘Visions of Gideon’은 이 영화의 서사와 완벽히 어우러지며,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을 동시에 전달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인위적인 갈등 없이도 관객의 마음을 조용히 파고든다. 영화는 큰 사건 없이, 감정의 파동과 그 여운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기며, 바로 그 점이 이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특징이기도 하다.

 

그 감정을 잊지 않도록, 불타오른 여름의 끝에서

영화의 마지막, 엘리오는 벽난로 앞에 앉아 홀로 눈물을 흘린다. 올리버는 돌아오지 않았고, 여름은 끝났으며, 사랑은 지나갔다. 그러나 그 눈물은 상실의 고통이자, 동시에 사랑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찬란한 흔적이다. 이 영화는 이별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속삭인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순간은 사라지지 않으며, 그것은 영원히 우리 안에 남는다. 엘리오의 부모가 보여주는 태도 또한 인상 깊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감정을 무시하지 말라”고 말하며, 젊음과 상처, 사랑의 흔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이는 어른이 된 후에도 간직해야 할 진정한 인간다움에 대한 메시지이자, 관객에게 보내는 응원이기도 하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찬란했기에 더 아팠던 여름의 기억, 이름만으로도 서로를 채웠던 사랑의 순간을 통해 우리 각자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감정이 누구를 향한 것이었든, 어떤 결과로 끝났든, 우리는 그때의 감정 속에서 자라났고, 더 깊은 사람이 되었다. 이 영화는 말한다. 사랑은 때때로 지나가지만, 그 감정을 온전히 느낀 사람은 결코 이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고. 그래서 우리는 그 감정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름으로라도 부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