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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들, 성장의 아이러니,지워지지 않는 여운,《레옹》

by kkunzee 2025. 7. 27.

뤽 베송 감독의 《레옹》은 냉혹한 킬러와 상처받은 소녀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관계를 통해 인간성의 본질을 탐구한 작품이다. 장 르노와 나탈리 포트만의 인상적인 연기, 절제된 감정과 폭력의 조화, 그리고 잔혹한 현실 속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유대는 관객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영화는 단순한 액션물이 아니라, 외로움과 사랑, 성장과 희생의 드라마로서 예술적 완성도를 갖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비정한 도시 속 외톨이들의 조우

《레옹》은 1994년, 프랑스 출신의 감독 뤽 베송이 연출한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설정과 감정선으로 전 세계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뉴욕이라는 비정하고 무표정한 도시를 배경으로, 타인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킬러 ‘레옹’과 가족을 잃은 어린 소녀 ‘마틸다’가 만난다. 이 만남은 결코 전형적이지 않다. 보호자와 피보호자, 어른과 아이라는 단순한 구도를 넘어서, 인간 대 인간의 고독한 마음이 조심스럽게 스며드는 관계로 발전한다. 서두의 이야기 전개는 빠르지 않다. 오히려 관객에게 인물의 고립된 감정과 도시의 냉담함을 충분히 체감하게 하며, 이를 통해 ‘레옹’이라는 인물의 침묵과 무표정 이면에 숨겨진 연약함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어린 마틸다는 상처받은 존재지만, 동시에 삶에 대한 욕망과 복수심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녀가 레옹에게 다가가고, 레옹은 마틸다를 외면하지 못하는 과정을 통해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은 결코 ‘가족’이나 ‘연인’이라는 말로 쉽게 정의되지 않는다. 영화는 이 애매하고도 복잡한 감정을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풀어간다. 감독은 시각적 과장이나 감정적 폭발보다는 침묵과 시선, 공간의 거리감을 통해 인물 간의 긴장과 신뢰를 묘사한다. 이러한 접근은 《레옹》을 단순한 액션영화의 틀에서 벗어나, ‘관계의 영화’로 확장시키는 중요한 미학적 선택이었다. 서론에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가 시작되며, 관객의 감정 또한 이 두 인물의 외로움에 서서히 동화되기 시작한다.

폭력과 보호 본능 사이, 성장의 아이러니

레옹은 킬러다. 감정을 배제한 채 정해진 표적을 제거하는 냉정한 살인자다. 그러나 영화는 그를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문맹이며, 식물 하나를 돌보며 살아가는 단순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러한 설정은 ‘폭력적 주체’로서의 킬러 이미지를 해체하며, 인간적인 연민을 자극한다. 반면 마틸다는 12살 소녀이지만 놀랍도록 냉소적이며 현실적이다. 어린 나이에 삶의 비극을 직면한 그녀는 오히려 레옹보다 더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진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전형적인 보호-피보호 관계를 전복시킨다. 레옹은 마틸다에게 총을 쏘는 법을 가르치고, 마틸다는 레옹에게 글을 배우고 삶의 의미를 묻는다. 이러한 관계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형태로 발전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지닌 폭력성은 서로를 보호하고 성장시키는 도구가 된다. 영화의 긴장감은 주로 마틸다의 가족을 몰살시킨 부패 경찰 ‘노먼 스탠스필드’(게리 올드만)의 존재에서 비롯된다. 그는 레옹과 마틸다의 안식처를 위협하며, 영화의 잔혹성과 현실성을 부각시킨다. 특히 게리 올드만 특유의 광기 어린 연기는 영화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며, 현실에서 법과 권력이라는 구조가 얼마나 잔인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외적 갈등과 함께, 영화는 레옹이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죽음을 각오할 수 있는 존재’로 변화해가는 내적 변화를 병치시킨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더 이상 ‘살아남기 위한 삶’이 아니라 ‘지켜주고 싶은 누군가를 위한 삶’을 선택한다. 이러한 전환은 이 영화의 가장 감동적인 지점이며, 마틸다 또한 이를 통해 진정한 성장을 맞이한다. 이처럼 《레옹》은 폭력과 순수, 어른과 아이, 현실과 이상이라는 이중 구조를 통해 인간 내면의 복합성과 관계의 본질을 묘사한다.

지워지지 않는 여운, 한 송이 식물처럼

《레옹》의 결말은 잔혹하면서도 아름답다. 레옹은 마틸다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마틸다는 레옹이 남긴 식물을 학교 정원에 심는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이별의 상징을 넘어, ‘삶이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한 남자의 희생은 한 소녀의 미래로 이어지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 전환점이 된다. 뤽 베송 감독은 이러한 메시지를 감정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까지 절제된 연출을 유지하며, 관객 스스로가 감정을 소화하게 만든다. 레옹이라는 인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가 보여준 인간성은 매우 현실적이다. 우리는 때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외로운 존재일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희망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마틸다는 그 희망을 이어받아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품게 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시한다. 그것이 무엇으로 규정되지 않아도, 누군가의 마음이 진심으로 닿을 때, 그 관계는 이름 이상의 무게를 갖게 된다. 《레옹》은 바로 그러한 이름 없는 유대, 정의할 수 없는 감정,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이 영화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감정이 결코 시대를 타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본질, 인간의 외로움,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절박한 욕망은 언제나 유효하며, 《레옹》은 이를 가장 순수하고도 잔혹한 방식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결국 이 영화는 질문한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 그리고 누구를 위해 죽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