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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속 유쾌함, '엑시트'의 반전 매력

by kkunzee 2025. 8. 5.

2019년 여름 개봉한 영화 <엑시트>는 재난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코믹한 요소와 결합하여 새로운 장르적 실험에 성공한 작품이다. 윤아와 조정석이라는 신선한 조합이 이끌어가는 이 영화는 독특한 소재인 ‘유독가스’ 속 탈출이라는 긴박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유쾌함과 감동을 잃지 않는다. 익숙한 가족 서사와 청년 세대의 현실적 고민까지 녹아들어 있으며, 한국형 재난 영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뛰어난 연출, 적절한 유머, 현실 공감 요소들이 적절히 조화되어 전 세대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코미디와 재난을 결합한 신선한 시도

한국 영화계에서 재난 영화는 꾸준히 사랑받아온 장르 중 하나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난 영화가 무겁고 극적인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된 데 비해, 2019년 개봉한 <엑시트>는 재난 상황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독특한 톤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는 조정석과 임윤아라는 의외의 조합을 전면에 내세우며, 예상치 못한 케미스트리와 탄탄한 시나리오를 통해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끌어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대학교 산악 동아리 출신의 백수 용남(조정석)이 어머니의 생신 잔치에서 우연히 대학 시절 짝사랑했던 의주(임윤아)를 만나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같은 시간, 도시 한복판에 의문의 유독가스가 퍼지기 시작하고, 도심 전체가 봉쇄된다. 용남과 의주는 생존을 위해 높은 건물로 탈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단순한 구조는 영화 전체를 일사불란하게 끌고 가며, 재난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보여주는 성장과 인간적인 면모가 감동을 자아낸다. 서사의 배경은 극히 제한적이다. 대부분의 장면이 빌딩 내, 옥상, 외벽에서 벌어지며 관객의 시선을 효과적으로 통제한다. 이러한 설정은 오히려 긴장감을 배가시키며, 한정된 공간에서의 창의적 탈출 장면들이 돋보인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목숨을 건 탈출뿐만 아니라, 가족애, 청년층의 현실적 좌절감, 세대 간의 단절 등을 유머와 함께 풀어낸 점이 <엑시트>의 진가다. 또한, 이 작품은 ‘재난은 멀리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사회에서 소외된 청년, 가족 안에서의 역할에 대한 부담, 관계의 어색함 등 현실적인 설정이 극적 상황 속에서 더욱 와닿는다. 이런 점에서 <엑시트>는 웃기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영화다.

 

캐릭터와 연출의 균형이 만든 재미와 몰입

<엑시트>의 가장 큰 장점은 인물 간의 조화다. 조정석이 연기한 용남은 능청스럽고 유쾌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청년의 초상을 담고 있다. 취업에 실패하고 가족 안에서 무능력한 존재로 인식되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과거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리더십을 발휘한다. 조정석 특유의 탄탄한 연기력과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이 어우러져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임윤아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다.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면모를 지닌 의주는 단순한 여성 조력자에 머무르지 않고, 용남과 대등한 파트너로서 탈출의 핵심 역할을 한다. 특히 위기의 순간마다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장면은 단순히 아름다운 여성 캐릭터 이상의 무게감을 지닌다. 연출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이상근 감독은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구성력과 감각적인 시각 연출로 극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유독가스가 퍼지는 장면, 외벽을 오르는 장면, 로프를 이용한 탈출 장면 등은 실제로 구현되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현실감 있게 묘사되며, CG와 실사 촬영의 경계가 흐려진다. 음향과 음악 또한 분위기를 잘 살린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배경음과 위트 있는 효과음은 영화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가족들의 반응이나 뉴스 자막 등은 현실적인 상황을 부각시켜주는 장치로 활용된다. 또한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구조대와 헬리콥터가 등장하는 장면은 클라이맥스를 향한 전개로서 훌륭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영화가 끝나고도 남는 여운이다. 누군가에겐 이 영화가 그저 유쾌한 오락영화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재난 영화라는 외피 아래 현실과 인간에 대한 깊은 시선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국형 재난 영화의 진화

<엑시트>는 한국 재난 영화가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재난 영화가 무거운 감정선과 거대한 스케일에만 집중했다면, 이 영화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소하지만 극적인 탈출기를 통해 관객과 보다 직접적으로 소통했다. 이는 단순한 스릴이나 공포가 아니라, 삶 속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위기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방식으로 다가섰기 때문이다. 특히 가족과 청년 세대를 동시에 아우르는 정서적 공감대는 세대 간 벽을 허물고 다양한 관객층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생일상, 자식의 무력감, 청년들의 취업난 등은 재난 상황이 아닌 일상에서도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이며, 이들이 비상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방식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또한 조정석과 임윤아라는 배우의 조합은 흥행뿐만 아니라 신뢰감 있는 연기와 감정선 전달로 이어졌고, 이는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으로도 이어졌다. 영화 전반에 걸친 유머는 억지스럽지 않고, 극 중 캐릭터들의 현실적 감정과 맞물려 관객에게 자연스러운 웃음을 제공한다. 이러한 균형 감각이야말로 <엑시트>의 가장 큰 미덕이다. 총체적으로 볼 때, <엑시트>는 단순한 재난 영화도, 단순한 코미디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두 장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새로운 장르적 가능성을 증명한 작품이다. 한국 영화의 다양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보기 드문 예로 평가되며, 이후 등장한 유사 장르 영화들의 기준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엑시트>를 통해 웃고, 울고, 공감하며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고 있을지도 모른다.